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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데도 가만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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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生命一家, 無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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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신성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생애가 불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존재가 변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전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진화하는 창조체들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어떤 일정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다음 내용을 한번 생각해 보라 :



1 용기 ─ 성격이 강인해지고 또 힘이 넘치는 것 ─

용기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만약 그렇다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어려움도 만날 수 있고 그리고 또 실망스러움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정한 환경에서 성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2 애타심 ─ 자기 이웃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주는 것 ─

애타심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삶에서의 자신의 경험에서 사회의 어떤 불평등과 부딪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3 희망 ─ 굳건한 믿음에서 나오는 위대하고 웅대한 것 ─

희망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현재는 항상 불안하고 또 되풀이되는 의문에 계속해서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4 신앙 ─ 인간의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결심 ─

신앙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것이 믿을 수 있는 것보다 늘 부족하게 알게 되는 그러한 힘든 곤경에서, 그렇게 그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5 진리를 사랑하고 그것이 이끄는 데로 어디던지 가보려고 기꺼이 나서는 마음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실수가 존재하고 항상 허위가 있을 수 있는 세상에서 자라나지 않으면 안된다.


6 이상주의 ─ 어떤 신성한 것에 다가가는 개념─

이상주의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상대적인 선(善)과 미(美)가 있고, 그래서 보다 나은 것에 도달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는 그러한 환경에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7 충실함과 의리 ─ 가장 높은 본분을 지키는 전념 ─

충실함과 의리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배반과 이탈이 일어나는 그러한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한 가운데에서 견디어내야 한다. 의무에 전념하는 용기에는 불이행이라는 위험이 존재한다.


8 사심없는 태도 ─ 자기를 잊어버리는 정신 ─

사심없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언젠가는 죽음을 겪는 사람은 자기자신이 인정받고 또한 명예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외치는 피할 수 없는 자기자신의 함성을 마주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은 만일 버리고자 하는 자기자신만의 생활이 없다면 신성한 삶을 힘차게 힘을 내어 선택할 수가 없다. 만일 선(善)을 드높이고 그와 차별할 수 있는 어떤 대비로서의 잠재적인 악(惡)이 없다면 사람은 결코 정의(正義)위에 그 구원이 되는 발판을 놓을 수가 없다.


9 기쁨 ─ 행복에 대한 만족감 ─

기쁨은 바람직한 것이고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 그렇다면 사람은 자기에게 가능해지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그와 대비되는 다른 쪽인 고통과 그리고 고난받을 가망이 언제나-실재하는 세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글 3 편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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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마지막으로 가디아를 만났을 때, 그들은 선(善)과 악(惡)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팔레스틴 청년은 세상에 선과 악이 병행하여 존재하는 부당성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느님이 무한히 선하시다면, 어째서 우리로 하여금 악으로 인한 슬픔을 겪게 내버려두시는지요? 도대체 악은 누가 만들어낸 것입니까?"라고 말하였다.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선과 악 둘 모두를 창조했다는 것을 여전히 믿고 있었지만, 예수는 그 같은 잘못된 가르침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그 질문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형제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럼으로 그 분은 반드시 선할 수밖에 없다; 그의 선함은 너무나 위대하고 실제이므로, 악의 그 작고 또 실제도 아닌 것들은 들어있을 수가 없다. 하느님은 너무나 적극적으로 선하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잠재적인 악도 남아있을 여지가 절대적으로 없다. 악은, 선에 저항하고 아름다움을 거부하며 진리에 불충하는 무리들의 성숙되지 못한 선택이며 경솔한 과실이다. 악은 단지 미숙(未熟)함을 오용한 것이거나, 혹은 무지(無智)로 인한 파괴적이고 왜곡된 작용일 뿐이다. 악은 어리석게 빛을 거부한 결과로 수반되는 필연적인 어두움이다. 악은 어둡고 거짓된 것이며,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고의적으로 시인될 때에만 죄가 된다."
[글 130 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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