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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상 선생 특강 : 원극학 이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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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별 강좌 - 3. 부지런히 수련 하는 것과 깊이 깨닫는 것

원극공법은 수련 중에서 특별히 연단과 깨달음을 분리하지 말고 밀접히 하는 것, <연중오(煉中悟), 오중연(悟中煉), 오연결합(悟煉結合)> 즉 연공(煉功) 중에 깨달으며, 깨달음 가운데서 연공하고, 깨달음과 연공을 결합할 것을 제시하였다.
이 원칙은 아직 많은 수련자들 가운데서 중요시 여김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연공 할 생각에만 치중하여 매일 견지하기만 하면 곧 만족해 한다.
깨달음에 대하여 말하면 곧 망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수련에서 연공을 중시하고 깨달음을 경시하는 현상이 비교적 보편적이다.
원극공법 수련의 전수 중에서 보조마다 깨달음과 연공(悟煉)의 원리가 관통되어 있다.
원극도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원극공법 수련은 성명쌍수(性命雙修) 성위본(性爲本)이다.
련(煉)은 명(命)을 중하게 여기고, 오(悟)는 성(性)을 중시하여 연공과 깨달음(煉悟)이 화합하여야 비로소 ‘감로 결심은 중심에 있다’의 효응이 있으며, 비로소 성명쌍수의 경계에 이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수련 중의 단(丹)을 현주(玄珠), 미태(美胎), 혜명(慧命), 성광(性光) 등으로 불렀으며 결단(結丹)은 연공과 깨달음(煉悟)의 결정(結晶)임을 설명하였다.
원극공은 이것을 일러서 <령묘발장(&#28789;苗&#21457;&#38271;) 혜근중재(慧根重載)> 라고 한다.
묵념공결(默念功訣)은 원극공법 수련의 주요한 방법이다.
염결(念訣) 요구는,

심중기(心中起): 심중에서 일고,
음중출(音中出): 음중에서 나오고,
안중과(眼中&#36807;): 안중에서 지나며,
이중입(耳中入): 귀속에 들어가고,
규중락(竅中落): 규중에 떨어진다 이다.


마음에 없는 염결(念訣)은 반대한다.
원극공의 염결(念訣) 방법 중에는 깨달음과 연공(悟煉)의 요령의 포함되어 있다.
결이 읽는 움직임을 통하여 능량을 조동하여 전신을 관통한다.
만약 혜심의 조정과 통제가 없으면 조동된 능량은 규칙적으로 운행하기 어렵고 목적에 따라 규에 돌아 가기가 어렵다.
오(悟)의 기점은 바로 잡념의 교란을 물리치고 한 마음으로 드놀지 말고 염결(念訣) 하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오(悟)는 연공 중에서 그렇게 신비한 것이 아니다.
련(煉)은 능량을 조동 하는 수진의 과정이다.
련(煉)은 능량을 조동 통제하여 순서대로 합하게 하며 규칙적으로 운행하고 합화 응집되어 단(丹)을 만든다.
공결의 이해에 대하여 불분명한 것을 명백하여야 할 것을 요구하는데, 소위 주요하게 공결에 대한 함축된 의미를 가리키며 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집요하게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공결에 대한 문자 이해는 불가(佛家)에서는 문혜(問慧)라 불렀다.
문혜(問慧)는 다만 하나의 후천지식이므로 언제나 수련에서는 쓸 수가 없다.
폐하면 공결 중에서 <감산전해(坎山塡海) 평파랑(平波浪)>, 모두 다 아는 <감산(坎山)>은 심(心)을 조동하고, <전해(塡海)>는 신(腎)을 조동하며, 심신(心腎)이 서로 상교 하는데 이르며 수화(水火)를 완전하게 구제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심(調心)하고 조신(調腎)하며 어디에서 상교(相交)하여 서로 구제하는가?
우리는 알 방법이 없으며 또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직 염결의 과정 중에서만 가히 깨달음으로 증명할 수 있다.
만약 염결 가운데서 언제나 심(心)이나 신(腎)만을 생각 하면 잡념이 생겨서 연공효과에 영향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흐리멍텅한(糊&#28034;起) 것의 목적은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효과 있는 능량조동의 유력한 조치이며 역시 깨달음과 연공(悟煉)의 편리한 법문이기도 하다.
흐리멍텅한 것의 염결 과정 중에서 염결로서 능량이 발생되어 나와 인체에 대하여 정체 조정을 진행하여 사람의 성격과 정신면모에 모두 새로운 개변을 가져오게 하는데, 이는 깨달음(悟)의 첫 걸음이며 염결이 깨달음과 연공에서 상합한 방법의 지도하에서 진행된 것이다.
염결의 심입(深入)에 따라 능량이 체내에서 생화하여 체내에 자연히 희락이 상생(常生)한다.
이것은 수련 중에서 깨달음(悟)이 또 한층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悟)은 투기성(透機性)이 커서 다만 운화과정에서 황홀한 감각 뿐이여 명백하게 음(音)으로서 표달할 수 없다.
밝은 것 같기도 하고 밝지 않은 것 같기도 한 단계에 속하며 수련 중에 모두 희락 상생을 일종의 연공 효응으로 보고 깨달음(悟)의 각도로부터 이해하는 것을 홀시한다.
희락상생(喜樂常生)은 다시 상층루에서 명백히 하는 경지에 들어가 염결 중에서 자연히 솟아나온 생각으로 표현되며 염결에 따라 사고를 진행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일종 모두 새로운 감각을 가지게 한다.
혹은 염결 중에서 돌연히 자동적으로 염결이 정지되고 온몸이 시원하고 편안하며, 어느 한 사물 혹은 어느 한 관점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낳게 하고, 언제나 신(神)이 필(筆)에서 오거나 혹은 생각지 못한 자극이나 느낌을 갖고 있게 한다.
총체적으로 이러한 자극이나 느낌에서 능히 돌연히 어느 한 점에 대하여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원극공 중에서 공 속에서 깨닫는 것(功中悟)이며, 역시 선천과 접촉하고 연계하여 후천을 완미하게 한다는 새로운 기점이며, 연공자들이 여기 본성이 승화되어 나온 새로운 점에서 조심하여야 할 것이 수요되며, 넝쿨 따라 박을 만지는 곧 자연적으로 일상 중의 사물이 융합되어 연공 중으로 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언제나 말하는 <공재일상중(功在日常中)>, 공이 일상 중에서의 묘용이라는 것이다.
공(功)중에서 명백히 하는 것의 깨달음은 연공에 대하여 어떠한 작용이 있는가?
연공은 혜심(慧心)의 지도하에 진행하며 능량이 혜심(慧心)의 지도에 따라 발생하고 응집되어 량(量)으로부터 질(質)로 변하는 비약을 가져와 규에 돌아가 단(丹)을 만드는데 이르며 잠깐이라도 혜심(慧心)의 지도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염결에서 음을 들으며 심규(心竅) 상합하여 음마다 규에 돌아와 산생 된 능량이 모여서 단(丹)으로 되어(뭉치) 발열하며 언제나 전신을 관통한다.
만약 입으로는 염결 하지만 마음 속이 산만하면 그 능량 역시 오합지졸이다.
수련이 희락상생의 경지에 이르면 규내(竅內)가 점차 광명하고 능량이 뭉치로부터 알(珠)로 되어 이따금 여러 색깔의 빛을 발생한다.
희락이 편안하게 통하지 않을 때 전신이 괴롭고 규내의 능량이 운전하기 어렵다.
어느 한 점에 대하여 돌연히 명백해지면 곧 전신 내외에 변화가 발생 되어 규내가 활발해지고 태주(胎珠)가 가히 혜심(慧心)의 지휘에 따라 변하며 <여의전발묘무변(如意展&#21457;妙无&#36793;)>, 즉 끝이 없는 묘용이 마음대로 전발하는 신기한 효응이 처음 나타난다.
전신에 편안하고 맑고도 화한 능량이 자연이 형성되어 호모공규 속을 출입하며 외부는 온 몸에 꽉 차고 내부로는 심(心), 비(脾)에 분비되어 각각의 세포에 분비되어 들어가며 각각의 세포의 깊은 층차에까지 분비되어 들어간다.
허령(虛靈)이 불명한 상태 속에서 순서 있는 정보(信息)를 마음으로 알고 이해하여야 하며 정체의 감수를 형성해야 한다.
깨달음(悟)은 수련을 동반하여 산생 되며 수련 중에서는 반드시 접수하는 것과 승화에 주의하여야 한다.
초기 연공에서는 가히 능량 운화에 의거하여 희락이 산생하고 사려(思慮)를 부단히 촉진하며 부지런히 수련하여 정진하는데 힘써야 한다.
능량이 일정한 정도로 모이고 만약 의연히 이러한 피동적인 희락에만 만족한다면 곧 바로 두 가지 정형이 나타날 수 있다.
첫째는 능량이 일정한 층차에서 경맥을 따라 운화하지만 다만 기체의 활성(活性) 증가를 얻어 대사 활동을 증강하고 병을 쫓고 신체를 튼튼히 할 뿐이다.
둘째는 능량이 집결된다는 것을 감각하지만 잘 통하지 않고 전신에 충족하지만 혜심(慧心)이 통제하기 어렵게 되어 염결만 하면 어리둥절하여 정신을 팔고 염결의 소위의 혼돈상태를 까맣게 잃어버린다.
연공은 본성을 승발 시키므로 체내의 능량이 융합되지 않으면 곧 일종의 갈망이 산생 되어 새로운 돌파를 가져올 욕구가 있게 된다.
더욱이 깨달음에 대한 중시가 부족한 결과 언제나 연공이 기로에 들어가게 한다.
수련한 시기 혹은 매우 긴 시간에 층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깨달음에 공력을 들이지 않아 반대로 공법이 층차가 모자란다고 여기며 혹은 능량 극발이 너무 늦다고 여기는 결과 시기를 잃어버려 일이 거의 될 무렵에 견지하지 못하여 성공하지 못하며 그만두는 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공법을 택하는 자들도 있다.
만약 근본상으로부터 인식한다면 의연히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불가(佛家) 수련계에서는 잘 말하였다.
<불(佛)은 영산(靈山에 있으니 먼 곳에서 구하지 말지니, 영산(靈山)은 오직 너의 마음에 있다. 사람마다 영산탑(靈山塔)이 있으니, 일찍이 영산탑 아래에서 공력을 요구하며 자기에게서 수련의 층차를 요구하여야 한다>.
옛사람들이 바로 말하였듯이 <약(葯)은 귀천이 없지만 아득한 병에도 좋은 것이고, 법은 높고 낮음이 없어도 맞띄우는 기회가 묘하다>.
소위 맞띄우는 기회(&#24403;機)란 곧 바로 연공 중에서 제때에 연성 발동의 순간에 진행되는 느낌과 깨달음이며 그 묘용이 앞에 있는 것이다.
만약 느낌과 깨달음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공법이나 아무리 높은 층차일지라도 역시 가망이 막급(莫及)이다.
혹은 빨리 도달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적당한 때에 깨달음이 열리면 쉽게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만나며, 엷은 것으로 깊은 것을 파내어 직접 상층을 깨달을 수 있어 수진의 묘함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층차로부터 말하면 깨달음(悟)은 수련 중에 있고, 깊은 층차로부터 말하면 공력은 도리어 외부에 있다.
깨달음(悟)은 수련상태에서 전방위적으로 천지와 만물이 만나서 융합된다.
그러므로 평시에 아래의 몇 가지 문제에서 주의하여야 한다.
① 이론 속에 들어가 깨닫는 것을 중시하여야 하며 이론으로 영성을 개발시켜 능량을 조동 시키면 마음이 맞는 것이 그 중에 있어 <주인이 집안에 들어가십시오> 하는 것과 같다.
② 일생상활 중에서 깨달음을 얻는데 주의해야 한다. 각기 다른 일은 각기 다른 물질능량과 장소와 대응되며, 만물의 이해와 연구에 대하여 역시 인체내부 어느 한 부분적 능량 조동과 승화에 대하여 대응되는 것이다. 만사 일리는 일리를 구하는데 그 묘함이 있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만법의 진수이다(萬法之眞).
③ 양덕으로부터 착수하여 깨달음(悟)을 위한 양호한 정보환경을 건립하고 덕으로 공을 깨달으면 감격되어 소원대로 통할 수 있어 끊임없이 무한한 것이다. 깨달음(悟)은 유무지간(有无之間)에 있고 원극공 수련은 유언(有言)이 무언(无言)을 나타낸다. 묵념은 유형의 공결에서 무형의 원음을 깨달아야 하며, 유상(有相)으로 무상(無相)을 전시하며 유형의 효응으로 문진을 두드려 무궁한 진경을 반관내조(返觀內照) 한다. 있는 데로부터 착수함은 도인(導引)이고 없는 데로부터 증명함은 근본(根本)이다. 깨달음을 연마한다고 하지만 다만 연공만 하고 깨닫지 못하면 하나의 깊은 심연과도 같다. 다만 깨달음만 알고 연공을 하지 않는다면 참대광주리로 물을 긷는 격이고 부지런히 수련하고 참답게 깨닫는 것이야 말로 천산만수를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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